본유 이야기

[스크랩] 기적수업을 통해, 질병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환상에서 벗어나기(끝부분갈무리)

후나잉 2012. 6. 11. 03:59

질문: 앞으로 선생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선생님이 도달할 새로운 경지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우리는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란 존재하지 않지요. 따라서 나는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것이 내 동료들을 미치게 합니다.(웃음) 다음과 같은 레슨을 아실 겁니다. “나는 미래를 신의 손(The Hands of God)에 내려놓는다.” [역주: LESSON 194 I place the future in the Hands of God.]

당신이 정말로 이 레슨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동료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내년은커녕 단 5분후에도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웃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당신은 미래를 신의 손에 내려놓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거나 또는 하고 싶은 것을 미리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이 우리의 생존이 지금 의식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세우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5개년계획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것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절대적으로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저절로 완벽하게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자발적으로 펼쳐집니다. 내가 가야할 필요가 있는 곳은 저절로 불이 밝혀져 나를 안내합니다.

오늘 아침에 나는 스위튼로우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식당에 있었는데, 내가 말했지요. “스위튼로우가 좀 필요한데.” 그러자 옆에 있던 사울이 여종업원에게 말했지요. “50개의 스위튼로우를 구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말했지요. “30센트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시 나의 마음은 식료품가게가 아침 7시나 8시가 되어야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식료품가게가 열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는 자신을 보는 순간 즉시 그 생각을 놓아버렸습니다. 모든 것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에서 얼마나 스위튼로우를 구할 것인가에 대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자동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적 경험으로서의 생각을 놓아버릴 때, 이제 당신은 그것을 살아있는 경험으로 보게 됩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 누구와 함께 살게 될 것인지, 누구와 사랑에 빠질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도 나는 모릅니다. 또 재정적인 것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지금 나는 아무런 수입이 없습니다. 전혀 없지요.(웃음) 세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나의 수입은 제로입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나도 그러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내맡길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발적으로 되어가며, 우주의 힘이 이 육체와 삶을 지속하도록 배려해 줍니다. 이 육체와 더불어 멜로드라마가 계속 일어나지만 얼마안가 당신은 자신이 이 육체가 아님을 알게 되고 또 이 육체와 연결된 멜로드라마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내가 처음 그러한 경험을 했을 때, 마치 나는 ‘데이브’(Dave:박사님의 육체)로부터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데이브는 그런대로 흥미로운 것이었지만.(웃음) 내가 데이브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당시에는 나는 그에게서 일어났던 모든 이야기들과 그의 전생들에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물론 흥미로운 것이긴 하지만... 전생에 들어가 보면 그것이 일종의 제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육체와 이 육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들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생들도 마찬가지로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실재보다 덜하지 않습니다.(큰 웃음) 그것들은 육체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만큼 실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떠한 것도 미리 계획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자신의 본성에 의해 우주 속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완벽합니다. 모든 것은 그것이 펼쳐져야 하는 그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해야 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가장 높은 의식 수준에서 보면, 무언가에 대해 해야 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우주는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펼쳐지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질문: 저는 기적수업을 두 가지 수준에서 바라 볼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수준은 소박하게 문자적 수준에서만 바라보는 것이고요, 두 번째 수준은 우리는 에고체계 안에 있으므로 결국 우리는 에고 안에서만 변형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듣고 싶은 것은, 만일 우리의 육체가 환상이고 우리가 마음이라면, 선생님은 성적 경험에 대해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창밖으로 던져버리시겠습니까? 분명 선생님도 성적 경험을 부정하지는 못하실 텐데요. 제가 말하는 성적 사랑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 에고 체계이다.”라고 말씀하시겠지요. 저도 성스러운 관계 속의 성적 관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대답: 육체의 목적은, 기적수업에 의하면, 당신은 기적수업을 공부하고 경험하셨겠지요, 육체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적수업에서는 그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한 청중의 대답: 육체의 목적은 정보의 소통입니다.)

대답: 예, 좋은 의견입니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지금 내가 이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좋습니다. 이 차원 안에서 당신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당신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이 육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통제하려는 욕망을 놓아버릴 때 즉,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신에게 물으려는 욕망을 놓아버릴 때,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갖고자 하는 의사소통은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당신이 즐겁고 깊은 교제를 원할 때, 육체는 저절로 그 일을 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이 육체와 동일시하는 것을 멈출 때, 육체는 해야 할 일을 자발적으로 해 나갑니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느끼고 상대방도 사랑을 느낀다면, 그 두 개의 육체는 그러한 감정을 자발적으로 표현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특별함이란 단지 관점일 뿐입니다. 성(性)에 있어서 특별한 것이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을 특별히 바라보지만 않는다면 말이지요.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는 것을 멈추고 단지 육체를 바라보기만할 때, 육체는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이 그것을 저항하거나 또는 욕구하지 않아도, 그것은 단지 저절로 일어날 뿐입니다.

완벽히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이 일어나도 좋고 또 그것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욕구하지 않고 또 그것을 저항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욕구도 하지 않고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무언가를 욕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늘을 위해 어떠한 음식도 욕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가 ‘먹어야 할’ 때가 되면, 음식은 어딘가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갑자기 음식이 나타날 것이고, 당신은 자신의 육체가 그것을 먹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내일이나 모래 또는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어디선가 음식이 나타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육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려고 한다면, 무언가를 먹고 있는 육체를 보게 되겠지요. 우주는 육체가 식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질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점심을 사먹기 위해 무언가를 하셨지요?

대답: (웃음)그렇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더 이상 육체와 동일시하지 않을 때, 마음이 육체를 돌보는 방법을 자동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감독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 과인지는 잊어버렸지만, 레슨이 있습니다. “나는 홀로 나의 마음을 지배한다.” 이 레슨에서 이야기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그것에 대해 해야 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마음은 육체를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이 보이므로, 나는 어떠한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육체를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역주: 여기에 인용된 레슨은 LESSON 236 I rule my mind, which I alone must rule.로 보입니다.]

질문: 맥스웰 슈말츠가 말하길 ‘마음은 목적지향적 기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도 단지 신념체계일 뿐입니까?

대답: 마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기에, 우리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혼동이 생깁니다. 형이상학적 또는 영적 시각에서 보면, 마음은 단지 생각일 뿐입니다.

내 경험에서 보면, 마음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금붕어 어항과 같습니다. 처음에 당신은 금붕어를 보고는 마음이 금붕어라고 생각합니다. 금붕어는 마음을 통과하는 생각들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생각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에 더해 당신은 그것이 당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에 더해 당신은 마음이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 연속 틀렸습니다.(웃음) 당신은 자신을 금붕어라고, 금붕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더 큰 웃음)

그 후 어느 날 명상 속에서, 갑자기 당신은 물을 봅니다. 갑작스럽게, “아, 나는 금붕어가 아니구나. 나는 공간이구나. 나의 마음은 생각들이 통과하는 공간이구나.” 이제 당신은 생각들이 헤엄쳐 지나가는 금붕어와 같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금붕어는 어디에서 헤엄치고 있는가? 생각들은 어디에서 떠다니고 있는가? 그러다가 갑자기 한순간에, 당신은 자신이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들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에 당신은 자신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생각들이 통과하는 공간입니다. 좀더 나중에는, 당신이 그 공간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하튼 마음은 육체가 그러하듯 환상일 뿐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마음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인가?(웃음) 이것이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들지요.(더 큰 웃음)

생각과 감정을 끊임없이 신에게 양도할 때, 그것들을 끊임없이 놓아버릴 때, 선(禪)의 방식으로든 기적수업의 방식으로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용서를 통해서 명상을 통해서 그렇게 해나갈 때, 결국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면... 예를 들어, 감정들을 끊임없이 놓아버리는 작업을 해나간다면, 당신은 생각들이 감정에 의해 치닫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두려운 감정을 놓아버린다면, 그 두려움과 연관된 모든 생각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신이 돌봐 주실 것이라는 완벽한 믿음을 갖는다면, 이 육체가 오늘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을 때, 육체는 오늘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지요.

(윗 문단의 첫 번째 문장에 이어서) 그렇게 할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면, 모든 두려운 생각들 즉, 어쩌면 비행기가 늦을 것이다, 어쩌면 티켓이 잘못됐을 것이다, 어쩌면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공항에서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수천가지의 두려운 생각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좋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감정이 수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기적수업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기적수업을 통해 두려움을 놓아버릴 때, 두려움과 죄의식에 연관된 모든 생각들이 사라집니다.

만일 당신이 어떠한 감정도-특히 억압된 감정- 갖지 않는다면 당신의 마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만일 당신이 생각을 자극시키는 어떠한 감정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웃음), 당신은 마음이 멈추고 생각이 멈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곳엔 침묵만이 존재합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텅빔. 그것은 환상적인 경험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경험이지요.

당신은 마음이 갑자기 침묵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합니다. 그것은 묘사를 넘어선 믿을 수 없는 심오한 평화입니다. 신의 평화는 침묵입니다. 갑자기 모든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이 이해됩니다.

“침묵하라 그리고 내가 곧 신임을 알라.”(Be Silent and Know that I am God)는 가르침을 알게(Known) 됩니다. 오직 침묵 속에서 알게(Known) 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어떠한 생각도 진실이 아닙니다. 생각은 의식의 어떤 수준에 오르기까지 일시적으로 유용할 뿐입니다. 그곳을 넘어서면, 생각은 방해물이 됩니다. 생각은 통나무배와 같은 것이어서, 만일 당신이 반대편 기슭에 도달하였다면 더 이상 그 배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 배를 떠나야 합니다.

생각은 단지 당신이 육체와 동일시하는 동안만 그리고 당신이 육체를 지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만 필요할 뿐입니다. 당신이 지휘하는 것을 놓아버릴 때, 생각은 멈추고 당신은 침묵 속에서 살아갑니다.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은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곳에서는 무언가에 대해 알(know)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직관에 가까운 것입니다. 직관 속에서 당신은 단지 압니다(Know).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매우 확실히 알고 있고 있지요. 그와 같은 앎(Knowing)은 당신이 모든 장애와 한계를 놓아버릴 때 일어납니다. 결국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멈춤입니다. 절대적인 침묵이지요. 단지 당신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할 뿐입니다. 다소 호기심 속에서(웃음), 오늘은 그(육체)가 무엇을 하게 될지 궁금해 합니다. 육체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 육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당신을 ...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우주적 조크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그 사람(육체)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그 육체가 자발적으로 온갖 것을 행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그것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말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출처 : 의식혁명 Study Club
글쓴이 : 침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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