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유 이야기

[스크랩] 연민

후나잉 2012. 6. 19. 17:03

작은 자기를 치유하는 길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양극화된 입장에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입장은 적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에너지와 힘을 부여합니다.


 

치유는 사랑을 주는 연민심, 본유적인 순수성을 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의식 지도의 낮은 수준) 보이는 것은 아이의 순수성입니다.
아이의 의식이 지닌 순수성이 보이고 프로그래밍이 개입되는 것이 보입니다. 

아이는 '사랑함의 상태'와 '신뢰함의 상태'에 있어서, 프로그래밍 되기가 아주 쉽습니다.
당신에게 순수성이 보이기 시작하면 심지어 가장 혐오스러운 것 안에서도 순수성이 보입니다.
사물의 핵심을 보려는 연민심으로부터 심지어 에고 안에서도 본유적인 순수성이 보입니다.

 

 

그러면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연민심으로 치유가 됩니다. 사랑으로 치유가 됩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상태를 사랑합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상태를 저주하는 대신에 "그 시점에서는 그것이 필요했음을 압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수치심이나 분노, 증오의 상태에 있는 대신에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음, 그 시점에서는 화나는 것이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한번도 증오한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수준으로 상승하지 못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생명에 대해 한 번도 염려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화나게 된 적이 없을 만큼 생명에 대해 충분히 염려하지 않고 실제로는 생명을 혐오하면

여기에 있는 '무감정(50)'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용서와 연민의 관점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상태를 바라볼 때

자신의 위대함 속에서 그것을 사랑하고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를 바라보듯이 자신의 작음을 볼 때,

이해와 연민을 통해 그것을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매우 강력한 에너지 장, 치유하는 에너지 장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연민심과 사랑함의 상태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그것을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용서하는 바는 우리 자신 속에서도 용서되며,
나 자신에 대해 용서하는 바는 세상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그런 것이 사라짐을 압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600의 수준에 이를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A가 영화B로 대체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마치 다른 색의 색안경을 쓰면 같은 것을 보아도 완전히 달리 경험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이 의식 지도의 목적입니다.

어떤 맥락을 창조해서 그 맥락으로부터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것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길이 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길이 그냥 자동으로 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의도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역량을 얻는 것,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

 

 

 

- A map of consciousness 중에서


 

출처 : 의식혁명 Study Club
글쓴이 : 마리아 원글보기
메모 :